역사자료실> 고조선의 역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2-03 15:10 조회23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고조선은 삼조선,즉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나누어집니다.
시베리아에서 환씨를 중심으로 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이들은 시베리아의 추운 날씨를 피해 만주로 이주해왔습니다.만주에는 이미 곰족과 범족이 있었는데,곰족 또한 환족처럼 이주민입니다.범족은 이주민을 노비처럼 대하여 마침내 곰족과 환족이 연인하고 범족을 쫓아내서 9환족을 세웠습니다.
이때,공을 세운 거발단환웅의 아들-환검(제1세 단군왕검)이 실력을 키워 기원전2333년에 9환족을 통일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환검은 후세단군의 목에 청동거울을 달도록 하고 도읍을 아사달(중국 창려)에 짓고 조선을 5개 행정구역(예,속진,개마,청구,남국)으로 나누고 부족장을 임명하였습니다.그는 백성을 관심하여 움집을 만들도록 권장하였습니다.그러다가,환검은 재위93년만에 죽고,아들 부루가 즉위하였습니다.
이때,남쪽에는 우나라가 세워졌습니다.또한,단군조선 안으로 부루가 즉위하자 불만한 호족-앙숙이 무리를 데리고 반란합니다.이 소식을 들은 우나라는 틈을 타 조선을 먹으려 하여 군사를 몰고 조선으로 쳐들어옵니다.그러나 이때 단군조선은 이미 반란군을 사막으로 내몰았습니다.이렇게 하여 부루단군은 태자와 함께 지형을 모르는 우나라군사를 늪에다 몰아죽였습니다.이렇게 하여 넓힌 영토는 남국이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이에,단군조선은 오래동안의 평화를 유지하였습니다.부루단군에 이어 단군이 된 갸륵단군때에 이르렀을때 집집마다 문을 열고 잘 정도였습니다.갸륵단군은 슬기로워서 가림토문(산동성에서 발견되는 훈민정음의 전신)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단군조선은 어려움에 부디치게 됩니다.단군조선은 청동기를 보급하면서 청동무기로 약탈무리가 생겨 혼란스러웠습니다.
이틈을 타서 내란을 극복한 은나라가 왕 무정의 대령하에 조선으로 쳐들어왔습니다.제21세 소태단군은 욕살고등이라는 무장을 시켜 막게 하였습니다.욕살고등은 은나라군사를 골짜기로 끌어내 몰살시켰습니다.
이 공로로 욕살고등은 우현왕으로 책봉되였습니다.한편 패한 은나라왕은 신경나서 폭정을 부려 기자라는 신하가 조선으로 도주합니다.이때 욕살고등은 죽고,그 손자 색불루가 우현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조정에서 자식없이 늙은 소태단군의 후계자를 정하려하는데 공세운 무신-색불루지지파와 세습귀족-서우여지지파로 갈라졌습니다.최초의 당파라 할수 있습니다.
조정이 서우여파로 기울자 노한 색불루는반란하여 서우여와 소태단군을 쫓아내고,제22세 색불루단군으로 즉위하였습니다.그러나 색불루는 정통성이 없어 많은 제후들이 등돌려 단군조선은 큰 어려움에 부디쳤습니다.이 틈을 타 우수한 문화를 가진 기자무리는 기원전1122년에 기자를 왕으로 하고 기자조선을 건립합니다.기자조선을 피해 단군조선은 할빈으로 천도해 단군조선은 더 어려워졌습니다.어느새,기자는 민심을 얻고 단군이란 칭호를 왕으로 바꾸고 추석을 세우며 아사달을 왕검성으로 고치는등 바빴습니다.
실력으로는 기자조선이 더 셌지만 기자조선 역대왕은 민심을 위해 껍데기 단군조선을 그대로 나두었습니다.그러다가 압력에 견딜수 없는 단군조선은 고열가단군의 퇴위로 사라집니다.기자조선의 부왕때 일입니다.부왕은 기뻐 국제정세도 보지 않고 술만 마셨습니다.이때 동방의 새 세력 연나라가 쳐들어와 기자조선의 요동땅을 뺏았습니다.이에 많은 부족들이 한강을 넘어 진국에 도주하였습니다.기자조선은 비록 요동을 잃었지만 철기를 접수하였습니다.그러나 보급적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왕이 죽고 기자조선 마지막 왕-준왕이 즉위하였습니다.이때 연나라는 진나라에,진나라는 한나라에 복속되였는데 불만한 연나라 옛 신하들이 노관을 중심으로 반란했는데 대세가 기울자 모두들 한민족연나라인-위만을 따라 준왕한테로 갔습니다.준왕은 위만의 지혜에 감탄하고 뇌물에 눈 쏘여 위만을 청천강-압록강 수비대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이에 위만은 실력을 키워 27년만에 반기를 들고 왕검성을 점령해 준왕을 쫓아내 3조선의 마지막-위만조선을 세웠습니다.한편,쫓겨난 준왕은 진국을 건립하고 한왕이라고 칭하였습니다.한왕은 끈임없이 위만조선의 성장을 도궤시켰습니다.
그새 위만조선은 철기문화를 보급해 철기무기와 군사로 진번을 정복하고,철제농기구로 군량을 가득 싸았는데,우거왕때에 이르러서 한나라를 멸시해 진국이 한나라로 가는 길을 막아 한왕의 돈을 많이 떼먹었습니다.이에 노한 한나라 무제는 섭하를 보냈지만,섭하가 장을 죽이고 오만하자 우거왕은 섭하를 죽였습니다.이를 꼬리로 한무제는 군사를 보내 조선을 쳤는데 다 졌습니다.
한나라는 화해하는체 하며 안으로 정돈하고 조선태자를 보내 육군6만,수군7천으로 다시 대규모적으로 쳐들어왔습니다.이에 위만조선은 위성도시를 잃어 왕검성은 고립되여 얼마안되는 군량으로 1년 견디다가 한나라뇌물을 받은 삼이 우거를 죽이자 멸망하였습니다.
충신-성기가 마지막으로 반항했지만 거품이 됩니다.
이에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식민수모를 당합니다.비록 한단고기는 다 믿을게 되지 못하지만 적어도 고조선의 역사는 인정해야 합니다.이제 우리나라역사도 반만년이 억지라고 생각말아야 합니다.

